지구 최강 동물 생존력으로 인간 노화 늦춘다
지구 최강 동물 생존력으로 인간 노화 늦춘다
섭씨 영하 273도의 극저온이나 물이 끓고도 남을 151도 고열에도 끄떡없는 동물이 있다.
몸길이가 1.5㎜를 넘지 않는 절지동물인 물곰이다. 과학자들이 우주에서도 물곰이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을 찾아냈다.
세포 시간이 남들보다 훨씬 느리다는 것이다. 같은 원리로 인간의 노화를 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지구 최강의 동물이 인간의 질병을 극복하고 노화를 억제하는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
인체 단백질로 만든 바이오 의약품도 물곰 단백질을 이용하면 냉장고 없이 실온에서 장기 보관할 수 있다.
물곰이 사회 인프라가 부족한 저개발국가에 의료 혜택을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다.
물곰 극한 생존력을 인간 세포에 부여
토머스 부스비(Thomas Boothby) 미국 와이오밍대 분자생물학과 교수가 이끈 국제 공동 연구진은 최근 국제 학술지 ‘단백질 과학’에
“물곰의 단백질이 인간 세포의 분자 작동 과정을 늦출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는 영국 브리스톨대, 미국 워싱턴대, 머시드 캘리포니아대, 이탈리아 볼로냐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연구진도 참여했다.
물곰은 다리 8개로 움직이며 이끼에서 플랑크톤을 잡아먹고 산다. ‘느리게 걷는 동물’이란 뜻의 타디그레이드(tardigrade)라는 이름이 있지만
물속을 헤엄치는 곰처럼 생겼다고 물곰이라는 별명이 더 유명하다.
물곰은 30년 넘게 물과 먹이 없이도 살 수 있다.
특히 우주에서도 문제가 없다. 대부분 동물은 10~20Gy(그레이) 정도의 방사선량에 목숨을 잃는데, 물곰은 무려 5700그레이를 견딘다.
2007년 유럽우주국(ESA)의 무인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나갔다가 12일 뒤 지구로 귀환했는데, 수분을 제공하자 일부가 살아났다.
2019년 이스라엘이 달에 보낸 무인 우주선에도 물곰이 실렸다.
와이오밍대 연구진은 물곰이 극한 환경을 만나면 몸을 공처럼 말고 일종의 가사(假死) 상태에 빠지는 데 주목했다.
이번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물곰은 극한 환경에서 세포가 젤처럼 변하고, 신진대사가 느려져 생체 정지 상태라고 불리는 가사 상태로 들어간다.
연구진은 물곰의 극한 생존 능력을 인간에 도입할 수 있음을 실험으로 입증했다. 가사 상태를 유도하는 물곰의 ‘CAHS D’란 단백질을 인간 신장세포에 주입했다.
그러자 인간 세포도 물곰처럼 젤이 형성되고 신진대사가 느려져 환경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었다.
중요한 사실은 이 모든 과정은 되돌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스트레스 요인이 사라지면 물곰의 젤이 녹고 인간 세포의 신진대사가 원래대로 돌아갔다.
특정 조건에서만 물곰 단백질을 쓰고, 환경이 좋아지면 다시 원상태로 돌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단백질 의약품, 세포 저장에 획기적 발전 가능
부스비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세포와 생체 전체에 가사 상태를 유도해 노화를 늦추고 저장성과 안정성을 향상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말했다.
인간 세포가 환경 스트레스를 이겨낸다면 그만큼 노화가 지연된다.
이론적으로는 영화에 나오듯 불치병 환자가 가사 상태로 있다가 의학이 발전한 미래에 깨어나 치료받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