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서 기억지우기 상용화 ;사람은 누구나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과 슬픈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이런 기억만 사라진다면 삶이 조금은 더 편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이러한 기억은 사소한 순간 순간에 몇 번이나 뇌에서 재생되고 우리의 마음을 괴롭게 만든다.
하지만 의학의 발전으로 이러한 고통에서 해방될 날이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를 찾아올지 모른다.
[ 환각제의 피닉스 효과 , 환각제를 투여하면 나타나는 ]
2005년 개봉한 ‘이터널선샤인’은 이별 후 기억을 지운다는 공감되는 설정과 뛰어난 영상미로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영화로 손꼽힌다.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 ‘라쿠나’를 찾아간 조엘(짐 캐리)은 여자친구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의 추억을 지우려 한다.
이별을 선언한 여자친구에 대한 분노와 괴로움을 잊기 위해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이른바 ‘추억 도려내기’가 현실화 될 날도 멀지 않았다. 기술은 이미 실용화 단계에 진입했다.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이는 경두개 자기자극술(TMS : 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이라는
신경조절술을 이용한 방법으로, 기억의 정착을 방해하는 효과가 입증됐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와 같은 힘든 기억과 관련된 질병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을 전망이다.
경두개 자기자극술(TMS)은 다른 치료법으로는 치료가 어려운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많은 연구에서 그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
이는 생체에 손상을 입히지 않는 방법으로, 코일인 자극기에 전류를 흘리면
자기장이 발생하는데 이 자기장이 뇌에 부딪히면서 전기장을 만들어 뇌를 자극하는 방식이다.
연구팀은 TMS를 이용해 대뇌 전두전야(前頭前野)의 기억 재고정화를 방해하는데 성공했다.
신피질의 전두엽, 특히 전두전야는 인간 행동의 총사령부라고 할 수 있다. 뇌 과학에선 이를 ‘실행제어’라 부른다.
전두전야는 뇌 속에 복잡 다양하게 얽혀 있는 수많은 회로나 다른 부위들을 제어한다.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 연구팀은 “TMS와 기억 재고정화를 결합한 실험적인 방법으로
전날 실험 참여자에게 심어 놓은 혐오기억(잊고 싶은 불쾌한 기억)을 수정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험에는 100명 미만의 건강한 성인이 참여했다. 첫 날 부정적인 기억을 학습하도록 하고 다음날 TMS 치료를 실시했다.
연구팀은 “우선 몇 장의 사진과 불쾌한 자극과 연결해 혐오 기억을 심었다.
다음날 일부 실험 참여자에게 동일한 자극으로 혐오 기억을 떠올리게 한 직후, TMS를 이용해 전두전야 활동을 저해했다”고 설명했다.
뇌에서 기억지우기 상용화
비교 대조를 위한 두 번째 실험 참여자 그룹은 혐오 기억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TMS 치료를 실시했다.
세 번째 그룹은 기억 재고정화에 관여하지 않는 뇌영역을 TMS로 자극했다.
연구팀은 “어떤 사건의 기억이 되살아난 순간은 극히 제한된 시간이지만, 해당 기억을 수정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짧은 시간을 이용해 혐오기억의 재고정화를 방해하는 방법을 구사했다”고 언급했다.
실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팀은 3일 후 참여자를 대상으로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켜 반응을 관찰했다.
그 결과, 전두전야에 TMS 치료를 받은 그룹은 ‘불쾌한 자극에 정신 생리적 반응의 저하’가 확인됐다.
당시 일어난 일은 떠올릴 수 있었지만, 당시와 같은 부정적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부정적 기억과 이어진 정신 생리학적 반응, 즉 아픈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 때 체내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우울증, 공황장애, PTSD 등과 같은 질병의 핵심 요소로 여겨진다.
연구팀은 “혐오기억의 재고정화 과정을 담당하는 전두전야의 기능을 TMS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지금까지 약물 투여로 얻은 효과를 이번 연구로 실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아직 실증 실험 단계이며 향후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생체 손상 없이 뇌 프로세스를 조작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연구팀은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