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시대 열어줄 세상에서 가장 빠른 카메라
양자시대 열어줄 세상에서 가장 빠른 카메라
벌새는 1초에 80번이나 날개짓을 할 수 있다.
사람 눈에는 윙윙거리는 소리와 흐릿한 모습으로만 날개가 움직인다고 인식될 뿐이다.
만약 날개만큼 빨리 작동하는 카메라가 있다면 벌새가 공중에서 날개를 편 채로 정지한 모습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카메라로 원자 속 전자의 움직임까지 알아낸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 노벨위원회는 3일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피에르 아고스티니(Pierre Agostini·70) 미국 오하이오대 교수,
페렌츠 크라우스(Ferenc Krausz·61) 독일 루트비히 막시밀리안대 교수, 안느 륄리에(Anne L’Huillier·65)
스웨덴 룬드대 교수가 아토초(attosecond) 단위의 빛 펄스(pulse)를
생성해 물질 내부의 전자 움직임을 연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밝혔다.
전자가 이동하면 에너지가 발생하고 식물은 광합성을 하며, 세상 모든 화학반응도 일어난다.
미래 세상을 좌우할 양자컴퓨터 역시 전자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은 세상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얼음 땡’ 놀이처럼 멈추고 관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미 에너지부(DOE)는 지난 2007년 21세기 기초과학의 방향을 제시한 보고서에서
아토초 레이저를 이용한 극고속 현상 연구를 5대 도전과제를 달성할 핵심 기술로 꼽았다.
전자 이동도 찍는 극고속 카메라 구현
TV나 영화에서 총알이 천천히 공중으로 날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총알 자체가 느려진 것이 아니라 카메라가
그만큼 짧은 간격으로 조리개를 열고 빛을 받아들여 정지한 것처럼 촬영한 덕분이다.
아토초는 작은 것의 상징인 나노(10억분의 1)보다 10억분의 1 작은 초이다. 즉 100경분의 1초에 해당한다.
아토초가 얼마나 짧은지는 1초 안의 아토초 수를 따지면 138억년 전 우주가
생겨난 이래 경과한 시간을 초로 따진 수와 같다는 점에서 잘 알 수 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3명은 짧게 빛이 지속되는 펄스를 아토초 간격으로 구현했다.
아토초 단위의 빛 펄스로 작동하는 카메라가 필요한 이유는 전자가 그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과학자들은 1000조분의 1초 단위로 작동하는 펨토(femto)초 레이저를 사용했다.
1980년때까지는 펨토초 단위의 빛 펄스만 가능했다.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는 펨토초 단위로 움직이고 회전해 충분히 관찰할 수 있었지만,
전자는 수백 아토초 단위로 움직여 펨토초 레이저로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없었다.
륄리에 교수는 1987년 적외선 레이저 빛이 특정 가스를 통과하면 마치
하나의 물결이 여러 개 동시에 생기듯 빛의 울림이 발생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바로 배음(倍音)이다.
빛이 기체의 원자와 상호작용해 일부 전자에 에너지를 추가하기 때문이다.
잔물결의 울림 같은 빛의 배음들이 서로 겹치면 파장의 마루와 골이 중첩되면서 더 큰 파도가 된다.
서로 반대면 상쇄돼 사라진다. 이렇게 아토초 단위로 폭발하는 펄스를 만들 수 있다.
다른 두 과학자는 배음 원리를 이용해 실제로 아토초 펄스를 구현했다.
2001년 아고스티니 교수는 연속적인 빛의 펄스를 생성하고 관측했는데, 각각의 펄스는 250아토초 동안 지속됐다.
같은 시기 크라우스 교수는 650아토초 동안 지속되는 단일 빛 펄스를 분리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세 사람의 연구는 이전에는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진행되는 반응을 연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노벨 물리학위원회의 에바 올슨(Eva Olsson) 위원장은 “이제 전자의 세계로 가는 문을 열 수 있다”며
“아토초 물리학은 전자가 지배하는 메커니즘을 이해할 기회를 제공했다. 다음 단계는 이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