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계 소행성에 19세기 여성 천문학자 몬더 에버렛 이름 붙여
천문학계 소행성에 19세기 여성 천문학자 몬더 에버렛 이름 붙여
천문학계가 19세기 당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을 인정받지 못한 여성 천문학자 2명의
이름을 따 소행성에 붙였다고 10일(현지 시각) 영국 거튼대와 일간지 가디언 등이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국제천문학연맹(IAU)과 카탈리나천체탐사(CSS),
영국천문학협회(BAA)는 소행성 2개에 애니 몬더(1868∼1947)와 앨리스 에버렛(1865∼1949)두 학자의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두 여성은 매우 적은 임금을 받고 천체를 기록하는 궂은 일을 도맡았다.
이들의 과학적 업적은 남자 동료들에게 넘겨졌으며, 과학자로서 뚜렷한 위상을 얻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마이크 프로스트 영국천문학협회 천문사 담당 국장은 “비범한 일을 한 비범한 여성들”이라며
“하늘 위에 한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고 평가했다.
몬더와 에버렛은 우수한 성적으로 시험을 통과했음에도 학위를 취득하지 못했다.
케임브리지에서는 1948년이 돼서야 여학생들에게 학위를 부여했다.
이후 두 여성은 졸업 후 그리니치 영국왕립천문대에 ‘여성 계산요원’이라는 직함 하에 별 위치를 측정하고 이를 도표화하는 일을 했다.
거튼대에서 당대 최고의 수학자로 손꼽히던 몬더는 월급 4파운드로는 생계를 꾸려가기 힘들다며 임금 인상을 간청했으나 소용없었다.
몬더는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가장 큰 태양 흑점을 발견했다.
이후 상사인 에드워드 월터 몬더와 결혼했는데, 강제로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당시 남편 월터는 자신보다 17살이나 많았고 아이가 다섯이나 딸린 홀아비였다.
몬더는 결혼 이후 남편의 자원봉사 조수로 계속 일했고, 남편과 함께 세계를 탐사하다가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현상인 개기일식을 사진에 담는 데 성공했다.
몬더는 오늘날 태양흑점을 분석하는 나비도(butterfly diagram)를 남편과 함께 창안했다.
그럼에도 그 업적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나비도는 태양 흑점이 나타나는
위도가 태양 주기에 따라 바뀐다는 점을 보여주는 도표로, 오늘날까지 널리 응용되고 있다.
이후 여러 권의 천문학 서적을 출간했으나 책에 남편 이름만 들어가는 경우가 잦았다.
남편 월터도 널리 읽힌 한 공동저서의 서문에서 “거의 전부 아내가 썼다”고 인정한 바 있다.
또 1916년까지 왕립천문학회가 남성 전용이었던 탓에 몬더는 학회 회원 지위를 얻지 못해 논문도 발표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자신이 발견한 흑점의 비대칭 속성에 대해서도 남편의 지위를 빌려 세상에 밝힐 수밖에 없었다.
몬더는 거튼대 기금으로 사진기를 구입해 당시로서는 최장인 1000만㎞까지 뻗어나간 태양 빛줄기의 증거를 포착했다.
에버렛은 한 해에 별 2만2000개를 관찰해 위치를 측정하고 별 궤도에 관한 논문 두 편을 발표했음에도 생계가 어려웠다.
주요 천문대가 일자리를 제안했다가 여성에게 직위를 허용할 방법을 끝내 못 찾아 철회하기도 했다.
그는 여기에 굴하지 않았다. 35세 때 광학 관련 분야에서 일하기
시작해 1903년 런던물리학회(PSL) 저널에 논문을 쓴 최초의 여성이 됐다.
1925년에 은퇴 전까지 국립물리학연구소(NPL) 물리학자로서 두번째 경력을 시작했고,
60세에는 전기 공학자로서 초기 TV 기술 선구자로 올라섰다.
에버렛은 텔레비전 발명가인 존 로기 베어드와 함께 TV 광학과 관련된 공동 특허권 신청에 성공해 1926년 첫 TV 영상 시연에 참석했다.
엘리자베스 켄달 거튼대 총장은 소행성에 에버렛과 몬더의
이름이 붙은 데 대해 “과거 잘못을 바로잡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영감을 주는 사건”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