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과 노하우가 내 자산 치매에 도전한 혈관 생물학자
인맥과 노하우가 내 자산 치매에 도전한 혈관 생물학자
남극 빙붕 밑 누비는 무인 잠수함 크레바스 역할 밝혀냈다
고규영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연구단장(KAIST 특훈교수)은 한국을 대표하는 의사과학자다.
혈관과 림프관을 연구해 국제 학술지 네이처, 사이언스에 수 차례 논문을 게재했고 2020년에는 세계 최고수준의
국제혈관학회(IVBM) 회장으로 선정될 정도로 리더 연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의과학대학원과 IBS에서 35명의 박사와 3명의 석사를 배출해 의사과학자 양성에도 앞섰다.
암과 관련된 모세혈관과 림프관을 주로 연구하던 고 교수는 몇 년 전 돌연 치매 분야로 눈을 돌렸다.
치매 분야에서도 고 교수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연구 성과를 냈다.
치매 같은 퇴행성 뇌질환을 유발하는 뇌 속의 노폐물이 뇌 밖으로 배출되는 주요 경로가 뇌 하부에 있는 뇌막 림프관임을 세계 최초로 규명한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노폐물 배출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하수관에 쌓인 이물질을 제때 뚫지 않으면 관이 막히고 고장이 나듯이 노폐물 배출이 제대로 되지 않는 걸 방치하면 치매 같은 뇌질환이 오는 셈이다.
고 교수의 연구는 퇴행성 뇌질환 치료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0월 24일 대전 KAIST의 IBS 캠퍼스에서 고 교수를 만났다.
세계적인 석학인 만큼 인터뷰를 앞두고 잔뜩 긴장했지만, 세미나가 끝나고 연구실로 돌아온 고 교수는 기자에게 밥부터 먹자고 권했다.
고 교수가 점심 식사 장소까지 직접 운전대를 잡은 차로 이동했다.
이날 점심을 함께한 연구원과 행정원은 “교수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점심 먹는 게 일상”이라고 말했다.
연구원들은 “다른 외부 활동이 많은 교수들과 달리 지금도 고 교수님은 한번도 빠짐없이 연구실로 출근을 한다”며
“매일 연구 이야기를 하기는 좋은데 어쩔 수 없이 열심히 연구할 수 밖에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고 교수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냥 ‘허허’ 웃었다.
혈관 생물학 분야의 권위자로 꼽힌다. 혈관 생물학은 어떤 연구를 하나.
“도로 종류가 다양하듯, 우리 몸 곳곳 혈관도 종류가 많다. 고속도로처럼 물질 운반을 담당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동네 골목길 같은 가는 모세혈관도 있다.
이를 연구하는 분야가 혈관 생물학이다. 연구실에서는 모세혈관과 일종의 하수도 역할을 하는 림프관을 연구하고 있다.”
혈관 생물학 연구는 언제부터 활발했나.
“히포크라테스 때부터 꾸준히 연구됐던 분야다. 모든 질병의 3분의 1이 혈관과 연관이 있다고 할 정도다. 치매나 당뇨,
뇌 질환의 진행이 대부분 혈관 손상과 관련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연구해야 할 필수 분야로 꼽히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혈관과 면역 사이 상호작용도 집중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치매를 유발하는 뇌척수액 노폐물의 주요 배출 경로를 세계 최초로 밝혔다.
“뇌척수액이 뇌수막에 있는 림프관을 통해 나올 것이라는 사실은 150년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기술의 한계 때문에 주요 배출 경로가 밝혀지지 않고 있었는데 뇌의 뒤쪽을 담당하는 척수액이 빠져나오는 경로를 밝혀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부분이 나이가 들수록 퇴행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노폐물을 제때 배출하지 못해 치매가 악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4년 전에 발표한 연구인데, 연구 인용 횟수가 500번이 넘을 정도로 치매 연구 분야에서는 인정을 받고 있다.”
치료법과 신약 개발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노폐물을 내보내는 림프관이 목을 통과한다. 이를 이용한 치매 치료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제일 쉬운 방법은 부드럽게 목을 마사지하는 거다. 오전에 15분, 오후에 15분으로 나눠 마사지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연구실에서는 보다 정확한 부위를 효과적으로 마사지할 수 있도록 인체공학 분야 전문가와 협업해 방법을 찾고 있다.
또 하나는 림프관의 활동을 돕는 약물이다. 림프관 주변에 있는 근육세포와 펌프 부분을 자극해 흐름을 원활하게 만드는 약물을 테스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