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터섬 문명 왜 사라졌을까 인구 급증 탓 아니다
이스터섬 문명 왜 사라졌을까 인구 급증 탓 아니다
남태평양에 있는 칠레 이스터섬(라파 누이)은 바다를 향한 600여 개의 거대 석상 모아이(Moai)로 유명하다.
과학자들은 이스터섬은 거대 석상을 만들 정도로 문명이 발달했지만, 급증한 인구를 유지하려다 생태계를 고갈시켜 스스로 붕괴했다고 추정했다.
최근 이 가설을 반박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농경지를 분석해보니 이스터섬의 인구는 늘 4000명 미만이었다는 것이다.
미국 빙엄턴대의 칼 리포(CArl Lipo) 교수와 컬럼비아대 딜란 데이비스(Dylan Davis) 박사 연구진은 지금까지
생각과 달리 이스터섬에서 인구가 급증하는 사건이 없었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 21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했다.
이스터섬은 인간에 의한 환경 파괴로 문명이 붕괴된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1200년경부터 폴리네시아인들이 정착했지만, 1722년 유럽인들이 섬을 발견했을 당시 주민은 3000명에 불과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를 포함한 전문가들은 이스터섬의 모아이를 보고 인구가 그보다 훨씬 많았다고 추정했다.
인구가 급증하면서 나무를 모두 베어버리고 토양을 고갈시켜 결국 문명이 붕괴했다고 생각했다.
연구진은 5년에 걸쳐 이스터섬을 조사하고 인공위성으로 섬 지역을 촬영했다.
이어 인공지능(AI)에 관련 정보를 학습시켜 섬의 농경지 면적과 식량 생산량을 예측했다.
그 결과 이스터섬의 농경지에서 나오는 식량은 2000명분에 불과했다.
인구가 갑자기 늘어 환경을 파괴했다는 가설과 대비되는 결과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2017년 “섬 면적의 19%인 31.34㎢(제곱킬로미터)에서 나오는 식량으로 최대 1만7500명을 부양할 수 있었을 것”이라 추정했다.
주요 농경지는 이스터섬의 ‘바위 정원’이다. 바위 정원은 돌, 바위를 토양 위에 쌓은 형태로
바위틈에 고구마를 심으면 바다에서 날아오는 염수와 건조한 바람을 막을 수 있었다.
토양의 표면 온도를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하는 역할도 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서 농경지로 추정됐던 바위 정원 대부분이 자연 암석 지대로 드러났다.
연구진은 “섬 전체에서 농사가 가능한 바위 정원은 0.5% 미만인 0.76㎢뿐이었다”며 “이곳에서 나오는 식량은 약 2000명분밖에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바위정원에서 나오는 농산물에 해산물과 같이 수렵, 채집으로 얻은 것까지 고려하면 섬이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인구는 3900명 정도로 추산했다.
수 세기 동안 이스터섬 인구는 4000명 미만으로 유지됐다는 의미다.
딜런 데이비스 박사는 “이스터섬 인구가 갑자기 늘어 문명이 붕괴됐다는 이론과 배치되는 연구 결과”라며
“주민들은 섬의 제한된 자원에 적응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방법을 찾아 생존한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바위 정원의 면적으로 인구 규모를 추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 해밀턴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교수는 “이번 연구가 기존 이론에 의문을 제기한 최초 사례는 아니다”며
“연구는 독창적이지만 바위 정원은 다른 시대부터 시작됐을 수 있고 일부 바위 정원은 간과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이번 연구진은 어떻게 이스터섬 사람들이 제한된 인구로 거대한 석상을 세웠는지는 밝히지 못했다.
다만 한정된 인원을 효율적으로 배치해 석상을 세웠을 것이라고만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