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 산골 지하 1000m 철광석 광산에서 우주비밀 캔다
원도 산골 지하 1000m 철광석 광산에서 우주비밀 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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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군 예미리는 한때 국내 유일의 철광석 광산인 한덕철광에서 철광석을 옮기기 위해 수많은 덤프트럭이 바쁘게 오가던 곳이다.
1980년대 정선군 인구가 13만명에 달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여 살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정선의 광산업은 급격한 쇠퇴기에 들어섰다.
채굴량은 급격히 감소했고, 광산은 하나둘 문을 닫았다. 정선의 인구도 빠르게 감소했다.
지난해 정선 인구는 약 3만5000명 수준으로 전성기 시절의 27%에 불과하다.
지난 2023년 12월 12일, 정선군 예미리의 한 폐교를 찾았다.
함백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함께 있던 교정에서는 이제 더 이상 어린 아이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인구 감소로 문을 닫은 수많은 학교 중 하나였다. 그렇다고 황량한 모습만 남은 건 아니었다.
학생들이 떠난 운동장에는 ‘기초과학연구원’이라고 쓰인 거대한 간판이 서 있었다.
철광석을 캐던 강원도 산골의 폐교는 이제 국내 최대 규모의 지하실험 시설을 운영하는 IBS 지하실험연구단의 연구소로 탈바꿈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90년 전 전 세계 물리학자들을 혼란에 빠뜨린 ‘암흑물질’을 찾기 위해 국내 최고의 연구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소중호 IBS 지하실험연구단 책임기술원은 “암흑물질은 이론적으로는 존재해야 하지만 그 실체를 아무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지하 1000m 아래 깊은 실험실에서 암흑물질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IBS는 2022년 9월 한덕철광 한켠에 암흑물질을 찾기 위한 실험실 ‘예미랩’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실험을 앞두고 있다.
현재는 실험시설 구축과 함께 예비 실험이 진행 중이다. 양양실험실에서 사용하던 장비를 2024년 말까지 모두 옮기면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다.
지상연구소에서는 예미랩에 설치된 실험 장비의 작동 상태를 살필 수 있는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온도와 습도에 민감한 실험인 만큼 내부 환경도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하다.
소 책임기술원은 “현재 예미랩 온도는 28도로 꽤 더우니 겉옷은 벗어두고 내려가는 게 좋다”며
“안전모와 안전화, 마스크도 꼭 착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이야기한 후 다시 차를 타고 10분을 달려 예미랩의 입구에 들어섰다.
철광 안전담당자의 안전교육을 다시 듣고 난 후에야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탈 수 있었다.
예미랩은 예미산 정상에서 1000m 아래에 있는 철광과 연결돼 있다.
지하 수직갱도를 통해 600m를 내려가야 닿을 수 있는 깊이다.
2분 30초가량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에 닿자 철광석을 운반하는 컨베이어벨트가 움직이고 있었다.
먼지와 소음으로 가득한 철광 한쪽에 있는 거대한 문을 열자 쾌적한 공간이 드러났다.
이곳에서 전기카트를 타고 또 5분을 달려서야 예미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워낙 예민한 장비가 많아 내부 환경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예미랩 안에서는 마스크는 벗어도 좋습니다.
본격적인 실험이 시작되면 대부분의 시설은 환경 유지를 위해 출입이 통제될 예정입니다.
앞으로 예미랩 내부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소 책임기술원의 말대로 예미랩 내부 환경은 예상보다 깨끗했다.
폐광을 이용한 시설이라는 말에 지레 갱도를 떠올렸던 게 무색했다.
벽면은 흰 페인트로 칠해 철광 내부와 달리 화사한 느낌마저 들었다.
소 책임기술원은 “방사선마저 최소화하기 위해 내부 마감할 제품은 엄격한 조건으로 선정했다”며 “흰색 페인트가 방사선이 가장 적어 내부 마감에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예미랩은 지하실험실답게 개미굴처럼 복잡한 복도로 연결돼 있었다.
복도 곳곳에는 실험을 위한 방이 여럿 마련됐다. 예미랩에서는 암흑물질 탐색과 함께 중성미자의 특성을 찾기 위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암흑물질 탐색 실험 ‘코사인(COSINE)’과 중성미자 특성 연구 ‘아모레(AMoRE)’가 예미랩의 주요 임무다.
암흑물질은 질량은 있으나 관측은 불가능한 미지의 물질이다.
IBS 연구진은 아이오딘화나트륨 결정에 암흑물질이 충돌하는 과정을 포착해 암흑물질을 찾을 계획이다.
암흑물질을 직접 관측할 수 없으니 간접적인 방식을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서는 암흑물질이 아닌 다른 입자에 의한 반응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 점에서 예미랩은 암흑물질을 찾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