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역에서 히어로로 헬리코박터균 위험과 혜택 공존하는 신비
악역에서 히어로로 헬리코박터균 위험과 혜택 공존하는 신비
병을 유발한다고 알려진 세균이 치료제 개발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위염, 위궤양, 위암의 주요 원인으로 잘 알려진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 pylori)라는 세균이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제2형 당뇨병을 예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를 포함한 국제 연구진은 헬리코박터균에서 분비되는 단백질
‘CagA’가 신경계 질환의 주요 원인인 아밀로이드 형성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 결과는 같은 날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실렸다.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접히고 서로 엉키면 아밀로이드라는 덩어리를 형성할 수 있다.
이러한 아밀로이드가 신경세포에 축적되면 뇌 기능에 심각한 손상을 줄 뿐 아니라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같은 신경계 질환 및 당뇨병을 초래할 수 있다.
아밀로이드가 인간에게는 해를 끼치는 물질이지만, 세균에게는 외부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세균막(biofilm)’의 주요 구성 성분으로 작용한다.
세균막은 항생제나 기타 외부 공격으로부터 세균을 방어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헬리코박터균이 분비하는 CagA 단백질이 이런 세균막의 형성을 방해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대장균과 녹농균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이 단백질이 세균 내 단백질 응집을 막아 세균막의 생성을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러한 CagA의 특성을 활용해 사람에게 질병을 유발하는 아밀로이드 축적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실제 실험에서 CagA는 알츠하이머병과 관련 깊은 타우 및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파킨슨병과 연관된 알파 시누클레인, 제2형 당뇨병과 관련된 아밀린의 비정상적인 응집을 모두 억제하는 효과를 보였다.
CagA는 기존에 암을 유발하는 독성 단백질로만 알려졌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질병 유발 단백질의 비정상적 응집을 막는 새로운 역할이 확인되었다.
또한, CagA는 매우 낮은 농도에서도 강력한 억제 효과를 나타냈으며, 단백질 종류에 따라 작용 단계가 달랐다.
예를 들어, CagA는 알츠하이머병 관련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의 경우 초기 핵 형성 단계에서, 알파 시누클레인 단백질의 경우 성장 단계에서 작용해 응집을 방지했다.
연구진은 CagA 단백질 구조를 분석해 아밀로이드 억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특정 부위를 식별했으며
이 부위만 별도로 분리해도 여전히 아밀로이드 생성을 막는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다.
이는 새로운 치료제 개발에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연구를 이끈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젠 진 박사는 헬리코박터균이 단순히 위장 질환 유발에만 관여하지 않고 신경계 및 대사 질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이번 연구가 보여준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CagA 단백질이 잘못 접힌 단백질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질환 치료의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