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쥐 장기 미니 모델링 성공 팬데믹 예방 연구 돌입
박쥐 장기 미니 모델링 성공 팬데믹 예방 연구 돌입
발자국 화석이 말해주는 것 육상동물 기원 재해석 시작됐다
사람에게 치명적인 전염병 중 다수가 박쥐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급성중증호흡기증후군(SARS)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등 팬데믹을 일으킨 바이러스들은 모두 박쥐에서 기원했다.
그러나 박쥐는 야생동물로서 실험실에서 다루기 어려워, 박쥐 내 바이러스를 분리하거나 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국내 연구진이 감염병 연구의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험 도구를 개발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최영기 바이러스기초연구소 소장과 구본경 유전체교정연구단 단장 연구진은 한국 토종 박쥐의
세포를 활용해 미니 장기인 오가노이드(organoid)를 제작하고, 이를 통해 신종 바이러스를 배양 및 분석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됐다.
야생 박쥐 연구, 미니 장기로 실현
최 소장은 동물에서 사람으로 전파되는 인수공통감염병이 증가하는 가운데, 특히 박쥐가 팬데믹을 일으킨 주요 병원체의 숙주로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쥐는 몸무게 대비 포유류 평균보다 3~10배 이상의 수명을 가지며, 수만 마리가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특성상 바이러스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현재 박쥐의 137종 바이러스 중 61종이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코로나19에 이어 차세대 팬데믹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바이러스X’ 역시 박쥐에서 비롯될 가능성을 예견하고 있다.
다만 야생 박쥐는 채집하기 어렵고, 충분한 조직을 확보하기에도 제한이 있어 실험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구본경 단장은 날아다니는 박쥐를 직접 실험에 활용할 수 없으므로, 박쥐 장기를 실험실에서 재현할 방법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연구진은 오가노이드 기술을 도입했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이용해 장기와 유사한 구조로 배양된 3차원 조직으로, 생체 환경을 모방할 수 있는 미니 장기이다.
기존에도 사람이나 동물의 세포를 통해 병원균을 배양하거나 약물 실험에 사용했으나
평면 접시에서 배양한 세포보다 오가노이드가 생체와 더 유사한 환경을 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박쥐 면역 반응의 차이를 규명
연구진은 국내 서식 박쥐 5종에서 얻은 세포로 기관지, 폐포, 소장, 신장 오가노이드를 각각 제작하고, 박쥐 유래 바이러스 10종을 감염시키는 실험을 진행했다.
다양한 박쥐 종과 장기를 포괄하며 이뤄진 이번 연구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사례다. 사이언스가 이 연구에 주목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실험 결과, 박쥐 종과 장기, 바이러스 종류에 따라 면역 반응의 강도와 형태가 뚜렷하게 달라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특정 바이러스가 실제 동물 장기 내에서 어떻게 퍼지고 병원성이 나타나는지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최 소장은 이를 통해 동물 한 마리의 여러 장기를 동시에 연구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또한 야생 박쥐 분변 시료에서 발견된 변종 바이러스 두 종류를 오가노이드에서 성공적으로 배양해 분리했다.
김현준 선임연구원은 이번 연구가 기존 방식으로 증식하기 어려웠던 바이러스를 생존 가능한 상태로 배양
분리할 수 있게 했다고 강조하며, 이는 신종 및 변종 바이러스 특성을 빠르게 이해하고 백신 개발 기간을 단축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