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눈은 자외선카메라 과학이 밝힌 순록의 비밀
루돌프 눈은 자외선카메라 과학이 밝힌 순록의 비밀
과학은 동심(童心) 파괴자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산타클로스가 하룻밤에 전 세계로 선물을 전달하기는 불가능하다고 계산하는 과학자가 등장한다.
올해는 동심을 지키는 과학자가 먼저 나섰다. 산타가 북극 순록(학명 Rangifer tarandus)인 루돌프에게 썰매를 맡긴 게 얼마나 잘한 일인지 분석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순록의 눈과 코가 눈밭을 달리기에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미국 다트머스대 인류학과의 나다니엘 도미니(Nathaniel Dominy) 교수와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대 심리뇌신경과학과의
줄리 해리스(Julie Harris) 교수 연구진은 지난 15일 국제 학술지 ‘아이퍼셉션(i-Perception)’에 “순록의 시각은 한겨울 어두운 눈밭에서 먹이를 찾는 데 최적화됐다”고 밝혔다.
산타가 썰매에 따로 먹이를 준비하지 않아도 루돌프가 알아서 찾아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연구진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순록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나다니엘 교수는 “순록은 정말 멋진 동물이지만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때만 생각한다”며 “지금이야말로 순록의 특별한 시각에 대해 알릴 좋은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1939년 그림동화로 산타 썰매를 끄는 루돌프를 창시한 인물도 다트머스대 졸업생인 로버트 메이(Robert May)였다고 말했다.
순록은 겨울에 눈밭을 뒤져 ‘클라도니아 랑기페리나(Cladonia rangiferina)’를 찾아 먹는다.
랑기페리나는 ‘순록 이끼’로 불리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끼(선태류)와 다른 지의류(地衣類)이다.
이끼는 잎을 가진 식물이지만, 지의류는 녹조류나 남조류가 균류와 공생하는 복합 유기체이다.
연구진은 “순록의 눈은 겨울에 자외선을 잘 감지하는 형태로 버뀌어 눈 속에서 자외선을 흡수하는 지의류를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순록의 눈은 계절에 따라 색이 바뀐다. 여름에는 황금색을 띠다가 겨울에는 파란색이 된다.
동물은 어두운 곳에서도 잘 보기 위해 망막에 추가 반사판인 휘판(輝板, tapetum)을 갖고 있다.
이 반사판이 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바뀐다.
북극권은 겨울에 해가 지평선 아래에 있어 햇빛 대부분이 청색광이다.
오존층이 지평선 근처에서 수평으로 온 빛 중 청색광만 통과시키기 때문이다.
순록은 반사판을 파란색으로 바꿔 청색광을 잘 받아들인다. 약한 빛이라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청색 반사판은 자외선도 잘 감지한다. 덕분에 순록은 눈에 자외선 카메라를 단 것처럼 자외선을 흡수하는 물질과 반사하는 물질을 잘 구분할 수 있다.
눈은 자외선을 반사하고 순록 이끼는 자외선을 흡수한다.
순록 눈에는 하얀 눈이 더 밝게 보이고 원래 옅은 색인 순록 이끼는 진하게 보여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순록은 여러 지의류 중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종만 찾을 수 있도록 시각을 발달시켰다.
스코틀랜드 케언곰 국립공원에서는 멸종했던 순록을 복원하고 있다. 고지대인 이곳에는 지의류 1500여종이 살고 있다.
연구진은 자외선 카메라로 이들을 촬영했다. 그중 순록이 찾는 종이 자외선을 가장 강하게 흡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순록은 눈밭에서 가장 진하게 보이는 랑기페리나를 골라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루돌프는 어떻게 계절 따라 시각을 조절할 수 있을까.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안과학연구소의 로버트 포스버리(Robert Fosbury) 교수는 지난해 영국왕립학회보B에 그 비밀을 밝혔다.
순록의 눈 색깔이 달라지는 것은 색소(色素)가 아니라 반사판 미세 구조의 변화 때문이었다.
모포(Morpho) 나비는 밝게 빛나는 파란 날개로 유명하다.
나비의 날개에는 색소가 없다. 대신 날개에 덮여 있는 비늘 표면에 크리스마스 트리의 가지처럼 생긴 광결정(光結晶) 구조가 있다.
모포 나비의 광결정은 파란색 파장의 빛만 반사하고 다른 빛은 그대로 통과시킨다.
이 때문에 나비 날개가 파랗게 보이는 것이다.
순록 눈의 반사판도 나비 날개처럼 콜라겐 섬유 다발로 구성된 미세 구조물이 있다.
투명한 상자에 육각형 연필을 다발로 세웠다고 보면 된다. 겨울에 연필을 촘촘히 세우고 물을 채우면 청색광을 반사한다.
여름에는 연필 간격이 늘어나 물이 더 들어간다.
이제는 반사판이 노란색 계열 빛을 반사해 눈이 황금색을 띤다.
UCL 연구진은 “겨울에는 타이어에서 공기를 빼 얼음판에서 마찰력을 높이듯, 순록도 겨울에 눈에서 액체를 빼고 주변을 더 잘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